식민사관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자국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고, 조선 민족의 자존감을 훼손하기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역사관입니다.
1. 식민사관의 문제점
1) 역사왜곡
식민사관은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여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임나일본부설, 등의 허위 주장을 통해 한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의 역사 의식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 임나일본부설 : 4 ~ 6세기 경(서기 400년 ~ 599년까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의 임나 지역(김해 - 금관가야)에 통치기구인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지배했다는 주장입니다.
2) 민족성 폄하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열등하게 묘사하고, 한민족의 특성을 부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적 파벌주의를 한민족의 고유한 특성으로 폄하했습니다.
※ 정치적 파벌주의 : 개인적인 친분이나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형성된 파벌이 공적인 관계와 사회적 연결망에서 자신의 계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동 양식이나 의식 상태를 의미합니다.
3) 자주적 근대화 발전 가능성 부정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일본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조선 문화를 일본 문화에 비해 열등하고, 미개한 것으로 폄하한 것 입니다. 이를 통해 조선 문화가 근대화에 필요한 발전 가능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식민사관은 한국 역사의 객관적 이해와 민족의 자긍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2. 식민사관 탄생 기원
이 역사관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1890년대 초기 형성
청일전쟁을 앞두고 일본의 대륙 침략 기운이 고조되면서, 도쿄제국대학의 관변학자들이 조선사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만선사관(滿鮮史觀)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한번도 역사를 만주사의 일부로 보는 관점입니다.
※ 만선사관(滿鮮史觀) : 20세 초 일본 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한국사에 대한 관점으로, 괴뢰국 만주국과 조선의 역사는 하나이며, 한반도 역사와 문화는 만주국에 종속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2) 일선동조론 발전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설, 임나일본부설 등을 주장하여 일선동조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주장으로,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 신공황후의 신라정벌설 : 일본서기에 기록된 이야기로,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하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신화적인 요소가 강하게 가미된 설화에 가깝습니다.
※ 일선동조론 : 일본과 조선(한국)이 동일한 조상에서 나왔다는 이론으로,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역사적 관점입니다.
3) 정체성과 타율성론
한국 사회가 봉건제를 거치지 않아, 자력으로 근대화를 할 수 없는 낙후된 사회라는 정체성론과 한국사의 독자적 발전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타율성론이 등장했습니다.
※ 봉건제 : 중세 유럽에서 나타난 사회 체재의 한 형태입니다. 이는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아닌, 여러 영주들이 각자의 영지를 다스리며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는 분권적인 사회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조직적 조작
일본의 이러한 역사관을 정책적, 조직적으로 조작하여 한민족을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되어 왔고, 자립 능력이 없는 정체된 민족으로 부각시켰습니다.
5) 우열의 논리
식민사관의 밑바탕에는 '자민족 우월의식'이 있었으며, 이는 민족을 우열로 나누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힘 만능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3. 식민사관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대한민국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식민사관의 잔재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식민사관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음과 같습니다.
1) 역사 교과서 논쟁
역사 교과서 서술 방식을 둘렀난 논쟁은 2004년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제작을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보수 진영은 기존의 교과서가 '친북·반미·반재벌·' 관점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진보 진영은 보수적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해석의 문제점이란 보수 진영에서 식민지 시대의 일제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식민사관의 잔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경우를 말하는 것 입니다.
식민사관의 잔재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과거사 문제 해결의 어려움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있어 일본과의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식민사관이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식민사관은 주로 일제강점기 이전의 한국사를 대상으로 하지만, 과거사 문제는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의 역사적 사건들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식민사관 극복은 주로 학문적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과거사 문제 해결은 법적, 정치적, 외교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식민사관과 과거사 문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그 범위와 해결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이 합의는 문제점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이 명확하지 않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 이라는 표현에 일본 정부 입장을 과도하게 대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 일부 대중 매체의 역사 왜곡
일부 대중 매체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식민사관 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내용을 방송하거나 기사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의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를 개인 간의 계약으로 축소하거나,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4) 사회 일각의 친일·반민족적 행위
일부 사회 세력은 여전히 친일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민족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독립운동을 단순한 '테러' 행위로 폄하하거나,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이는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친일 행위를 미화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